"맨발 공연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평화의 마음" [서평] 베트남을 울린 노래 운동가 홍순관의 <나는 내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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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3 05:16

작성자 : 별밭
OhmyNews 고상만 기자님의 홍순관님의 새 책 [ 나는 내 숨을 쉰다 ] 서평및 지난 여름 베트남 평화기행에서의 < 춤 추는 평화 > 공연 후기입니다.


지난 7월 말, 베트남으로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8박 9일이라는 여정을 통해 과거 우리나라 군대가 베트남 민중에게 가한 잘못을 사과하는 기행이었다. 단장은 명진 스님이었다. 전 봉은사 주지 스님으로 유명한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 당시 '좌파 스님'으로 공격 당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분이시다.

하다 하다 스님까지도 색깔론을 제기하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 명진 스님은 조금도 굴함이 없었다. "강남에 좌파 스님이 웬말이냐"는 이명박 정권의 공세에 "뼛속까지 친미(親美)라니 국산 쥐는 아닌 듯"이라며 맞대응한 일은 인터넷을 달궜다.

또한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시기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아버지 시대의 인권 유린을 사과하라는 여론에 "역사에 맡기자"며 회피하자 이를 반박한 명진 스님의 말씀은 뭇 대중에게 큰 웃음과 시사를 안겨 줬다.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는 천도재에서 추도사를 하던 명진 스님이 당시 박 후보의 발언에 "역사가 무슨 전당포냐? 과거를 맡기게"라고 하신 것.

그런 명진 스님이 베트남으로 평화기행을 가신다고 하니 당연히 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기행팀에 일원이 된 이유다. 한편 명진 스님이 베트남으로 평화기행을 떠나는 데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었다. 1973년 베트남 전쟁 당시, 명진 스님은 군 복무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부대 내 고참의 괴롭힘에 참지 못한 주먹이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렇게 친 사고로 징계가 논의되고 있던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찾아서 중대장실로 간 그곳에 듣게 된 한 마디는 바로 "너 영창갈래? 아니면 베트남 갈래?" 명진 스님은 당연히.... 베트남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명진 스님이 간 베트남은 당시 전쟁이 소강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무전병이었던 명진 스님은 총 한 번 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누가 총을 쏘는 것도 본 적이 없어 해외 파병은 갔으나 그저 놀다 온 것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베트남을 다녀온 후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군대의 일부가 어떤 참혹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명진 스님이 지난 7월 베트남을 간 이유는 바로 그런 과거의 잘못에 대해 당시 파병 군인의 일원으로서 직접 그 피해자의 묘에 참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러한 명진 스님과 함께하는 평화기행에는 모두 26명이 함께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했다. 그중에는 현직 교사도 있었고 건설 회사의 사장도 있었고 또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도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가수였다. 노래 부르는 사람, 바로 홍순관이었다.

평화를 노래하는 사람, 가수 홍순관

어 쩌면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그 이름 홍순관. 아는 사람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가수지만 그는 참 특이한 이력을 가진 독특한 가수였다. 나 역시 명진스님의 베트남 평화기행을 취재하고자 따라갔다가 그를 처음 만났다. 물론 이전에 그의 이름을 얼핏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그리고 왜 노래를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전무한 지식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진가를 확인한 것은 베트남에 도착하고 이틀째를 맞이한 날이었다. 이날 베트남 평화기행을 기획한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본부장 구수정)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기형 장애를 가진 이들과 우리 일행이 함께하는 '춤추는 평화'라는 공연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고엽제를 소나기처럼 뿌렸다. 울창한 베트남의 정글을 고엽제로 말려 죽임으로써 시야를 확보하려는 미군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위험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고엽제가 당대는 물론이고 후세에도 장애가 대물림되는 무서운 독극물임을 숨긴 것이다.

미군은 더 나아가 고엽제를 밥을 말아 먹어도 인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래서 고엽제의 독성을 전혀 몰랐던 우리 국군 중 일부는 고엽제 살포 비행기가 나타나면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는 말도 들었다. 날이 더운 베트남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해 미군이 더위 식히라고 뿌려주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처럼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뿌린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눈이 막힌 채 태어난 아이와 손과 발이 없는 아이,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 사산된 채 사라진 아이들까지 베트남에서 벌어진 참극은 너무도 끔찍했다. 이 고통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피해를 입은 고엽제 피해 아이들이 적국이었던 대한민국의 손님을 위해 먼저 노래를 불렀다.

레 퍼토리는 다양했다. 베트남 전통 노래로 시작하여 유명한 팝송까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의 최신 유행가까지 그들은 굽고 기형적인 손가락을 가지고 열성을 다해 음악을 선물했다. 그 모습에 일행 중 일부는 눈물을 보였고 또 누군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연신 박수를 치며 감동했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과연 저들의 감동적인 음악 선물에 우리는 무엇을 들려줄 수 있을까. 그때였다. 일행 모두가 깜짝 놀랬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가수 홍순관이었다.

맨발의 가수 홍순관, 평화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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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홍순관 평화를 이야기하는 '노래 운동가' 가수 홍순관의 노래는 늘 깊이가 있다.
ⓒ 홍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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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수 홍순관씨가 통기타를 들고 무대로 나갔다. 그런데 맨발이었다. 긴 바지를 입고 양말마저 벗은 채 맨발로 걸어나가는 홍순관의 모습은 그 모습 자체로도 비장했고 또 엄숙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노래. 참석자들은 가수 홍순관의 노래에 감동했다.

조 용하면서 낮은, 그러면서도 깊은 그의 울림이 베트남의 저녁 노을과 함께 퍼졌다. 그랬다. 베트남의 붉은 저녁 노을 빛처럼, 그의 노래는 무기를 녹인 용광로의 쇳물같이 뜨거웠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그에게 물었다. 왜 그날 신발을 벗고 노래를 불렀냐고. 그는 답했다.

"그날, 고엽제 피해 아이들의 음악에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것을 느꼈고 그 감동과 미안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과거 우리 잘못에 대한 진실한 사과 의미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공격하지 않겠다는 평화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 뭘까 싶어 찾은 것이 바로 맨발이었던 것이다."

베트남 평화기행을 통해 처음 알게된 후 나는 가수 홍순관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의 이름만 한두 번 들어봤을 뿐,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나 역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기에 그 먼 곳 베트남에 자비를 내고 찾아와서 평화의 노래를 부른 것일까.

1962년생. 10살에 서예를 배웠고 부산대에서 미술 조소를 전공한, 그러나 직업은 가수. 중학교때 부산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하면서 가수의 길을 걸었고 이후 고등학교 때부터 양로원과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해온 독특한 학생. 이후 대학생때는 부산, 대구 지역의 축제마다 불려 다닌 지역 스타 출신 가수.

하 지만 평화를 향한 그의 지향은 성장해 가면서 더욱 본격화되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부터 용산참사 현장, 제주 강정마을과 세월호 팽목항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평화와 인권을 말하는 외침이었다. 이러한 열정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까지 이어졌다. 필리핀 빈민촌과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장까지 그는 평화를 위한 노래를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 가수 홍순관이 한결같이 해 온 운동이 또 있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이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돕는 공연 '대지의 눈물'과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공연을 수백 회씩 해온 강단있는 평화주의자 홍순관.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를 가수가 아니라 '노래 운동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홍순관의 세 번째 책 <나는 내 쉼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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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관의 책 <나는 내 숨을 쉰다> 표지 가수 홍순관씨가 펴낸 세번째 책, 나는 내 숨을 쉰다. 그가 불러온 그동안의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게된 이야기를 담았다.
ⓒ 꽃다지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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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전이 있다. 가수 홍순관은 사실 잘 나가는, 그리고 원한다면 질곡의 길이 아닌 아스팔트로만 걸어갈 수 있는 '검증받은 가수'라는 점이다.

거리에서, 농성장에서, 그리고 치열한 싸움 현장에서만 그가 노래를 불러 왔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들어보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경력이 그에게 숨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력이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공연이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미국 카네기홀 공연은 사실 돈만 주면 대관을 할 수 있는 무대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는 음악성을 인정받은 가수가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도 대관할 수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나라 가수 중 최초로 공연한 사람이 홍순관이다.

광장으로 불리는 길거리 공연에서부터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KBS홀, 아르코 예술극장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하는 공연장도 그가 섰던 무대중 일부였다.

그런 그가 왜 높은 무대를 내려 놓고 집회용 앰프에 자신의 음악을 실어 내보낼까. 가수가 음향 욕심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말했다.

"평화 때문이다. 내 노래의 이유, 내 삶의 최종 끝 지점은 평화다. 모든 평화가 춤추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런 그가 이번에 책을 냈다. 책 제목 역시 평화가 느껴진다. 책 제목이 너무도 특이했다. <나는 내 숨을 쉰다>(꽃자리 출판사) 알고보니 가수 홍순관이 발표했던 노래 제목중 하나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 의 제목처럼 이 책은 숨결처럼 따뜻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가 스며드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가수 홍순관이 그동안 불어온 노래와 그것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중 하나를 인용하면 시인 윤동주의 시에 채일손 선생님이 곡을 붙인 '십자가'를 설명하는 그의 글이다. 1978년 만들어진 이 노래를 가수 홍순관은 1992년 부른다.

'... 쫓아오던 햇빛이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린 것은, 할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 ... 괴로웠던 사람 예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이보다 더한 역설이 있을 것이며 이처럼 장르를 넘어선 반어법이 또 있을까. 그리고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다고 노래한다. 생색을 내고 홍보에 들뜬 작금의 교회를 꾸짖는다. ...'

가 수 홍순관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 그리고 가수 홍순관이 쓴 세 번째 책, <나는 내 숨을 쉰다>를 통해 많은 이들이 평화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으면 싶다. 사람이 아플 때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듯 평화 역시 영원하지 않다. 평화가 깨진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다.

이를 위해 '노래로 평화를 말하는' 가수 홍순관. 이번엔 그의 책이다. <나는 내 쉼을 쉰다>를 권하는 이유다. 그가 꿈꾸는 평화가 춤출 미래를 위해 나는 그의 책을 읽는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