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의 삶에 큰 절을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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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05:55

작성자 : 춤추는 평화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는 음악 벗 신현정을 떠나보냈습니다...

2012년 12월 17일 현정이와 함께 녹음을 했습니다. 백석 시인의 <고향>과 <모닥불>에 곡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현정이의 유작이 되었고, 그만 마지막 녹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악동네에서 이십년, 가깝게는 십여년 곁에서 작곡 편곡 연주를 도맡아 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말 할 수 없는 감사지만, 늘 가난한 일에 마음깊이 동참해 주고 '내 일'처럼 애써 준 것이 마음 아프고 미안합니다. 애틋한 미안함이 끝이 없습니다. 현정이를 보내며 올렸던 <조사, 조의문>을 옮깁니다.

현정이의 남은 가족과 그의 영혼을 위해 평화를 빌어 주십시오.

 

 

현정의 삶에 큰 절을 올리며

 

 

“괜찮아요”

식당에서 뭘 시켜 먹을 때에 현정이는 이렇게 답합니다.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할때에도 현정이는 이렇게 답합니다.

“괜찮아요, 집사님!^^”

“너무 힘든 거 아냐? 이래도 괜찮겠어??” 물을 때 마다,

현정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하면 되요. 하면 되죠 뭐…^^”

먼 거리도 소용없고, 번거로운 일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현정이의 음악은 그렇게 탄생된 것들입니다.

 

채 마흔 네 살이 되지 않은 젊은 엄마 현정이는 모든 이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힘든 요구도 마다하지 않았고,

벅찬 상황에도 거절할 줄 몰랐습니다. 싫은 소리에 서툴고, 투정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삼일동안 다녀간 문상객이 참 많았습니다. 친구들, 음악동료들,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 동생들, 선생님들,

나이와 종교와 환경과 직업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참 많이도 왔고, 오면 떠날 줄 모르고 오래 동안 머물렀습니다.

삼일 내내 함께 한 친구도 많았습니다. 인생을 오래산 사람의 장례도 쉽지 않은 모습입니다.

현정이의 넉넉한 배려에 빚 진 사람들이었고, 자신은 고달프면서도 끊임없이 베푼 현정이의 사랑에 빚 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정이는 참 큰 사람입니다. 이웃을 내 몸으로 여기고 살다간 예수를 빼닮은 사람입니다.

현정이에게 진 빚이 참 많습니다. 아니, 빚졌다는 것을 이제사 압니다.

훌쩍, 나비처럼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으니 잡을 수도, 갚을 길도 없습니다. 불러도 대답해주지 않겠지만,

아직도 웃으며 “괜찮아요,,,” 할 것 같아 또 목이 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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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사랑하지 않는 어미 어디 있겠습니까?……

현정이는 어린 진서를 두고 갈 수 있는 그런 모진 엄마가 결코 아닙니다.

현정이는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세상을 향해 아파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아파했습니다.

자본주의에 구걸하며 나오는 음악을 아파했습니다.

늘상 손해를 보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는 남편 시영을 보고 많이 아파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다른 부모님을 대하며 몹시도 아파했습니다.

너무 많이 아파서 너무 많이 아파서 현정이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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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야, 그런 아팠던 엄마를 용서해 주렴.

시영아, 야속한 아내를 부디 용서해 주렴.

어머님 아버님 부디 불효한 현정이 그 착하디착한 딸을 용서해 주십시오.

남은 저희들이 현정이를 대신하여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현정아~

이제 너의 무대를 볼 수 없구나.

너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구나.

너의 그 4차원 어린 아이 같은 상상력의 세계를 이젠 만나볼 수 없겠구나.

현정아~

“괜찮아!” 지금 우린 너처럼 아프지만 너의 흉내를 내 보마.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